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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죠”···국내 중견 게임사가 빅테크에 반기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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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작성일25-06-05 20:37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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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를 왜 멨느냐고요? 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죠.”
바위에 계란을 치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국내 중견 게임사 팡스카이 이병진 대표(39)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 애플과 구글의 ‘인앱 결제’ 정책에 반기를 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23일과 이달 2일 각각 애플과 구글 본사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양사의 과도한 인앱 결제 수수료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다. 앱 마켓 생태계의 90% 이상을 장악한 두 회사의 인앱 결제 강제를 두고 국내 게임업계가 법적 대응에 나선 첫 사례다.
지난 4일 오후 찾은 서울 구로구의 팡스카이 사무실은 썰렁했다. 책상이 빼곡했지만 직원 대여섯 명이 듬성듬성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 대표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작년 11월에 직원 30명 중 25명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2012년 문을 연 팡스카이는 모바일 게임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퍼블리싱 회사’다. ‘드래곤라자 오리진’ ‘베스트리아 전기’ 등 게임을 배급해왔다. 2018년 직원 100여명을 둘 정도로 성장했으나 이후 매출 감소 등을 겪으며 규모는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6월 코넥스 상장에 성공했지만 외부감사인의 의견거절로 현재는 거래가 중지된 상태다.
이 대표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배경에 30%에 달하는 인앱 결제 수수료가 있다고 본다. 인앱 결제란 애플·구글의 앱 마켓에서 상품을 사고팔 때 이들의 자사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으로, 양사는 결제 금액의 최대 30%를 수수료로 떼어간다. 소비자가 1000원짜리 게임을 사면 앱 마켓 운영사에 300원이 돌아가는 구조다. 팡스카이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올린 모바일 게임 매출 약 500억원 가운데 약 140억원를 애플·구글에 수수료로 냈다.
“저희 같은 퍼블리싱 회사는 개발사에서 게임을 가져오는 비용에 더해 서버비, 각종 운영 관련 비용, 마케팅비 등을 부담해야 해요. 요즘 하도 레드오션이라 마케팅비를 써야 매출이 나오는 구조인데, 여기에 앱 마켓 수수료 30%까지 고정적으로 내야 하죠. 게임이 잘 된다 해도 남길 수 있는 건 많아야 매출의 15~20% 정도입니다.”
양대 앱 마켓의 수수료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1년 한국 국회가 세계 최초로 ‘인앱 결제 강제 금지법’을 도입했으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플·구글이 외부 결제를 허용하면서 기존보다 4%포인트 내린 26%를 제3자 결제 수수료로 책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 세계 대부분 기업은 생태계를 장악한 양대 빅테크의 눈 밖에 날 것을 우려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국내 대형 게임사도 마찬가지다.
“자본력을 갖춘 회사들은 애플, 구글이랑 등질 이유가 없죠. 브랜드 손상을 우려해서 움직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 비견되는 싸움을 시작한 배경엔 절박감이 있었다. 이 대표는 “투자나 자금 사정이 원활했다면 저희도 맨 앞에 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회사가 처한 상황을 이겨낼 가장 심플한 방법이 소송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각국에서 일고 있는 빅테크 규제 움직임도 용기를 줬다. 미국의 유명 게임사 에픽게임즈는 2020년 애플·구글의 인앱 결제 강제에 반발하며 시작한 소송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고, 유럽연합(EU)에선 지난해 빅테크 반독점 규제법인 디지털시장법(DMA)를 도입한 이후 애플이 인앱 결제 수수료를 17%로 대폭 낮추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번 소송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커보였다. “작년에 어쩔 수 없이 내보냈던 직원들 미지급 임금이 있어요. 그걸 먼저 정리하고 싶어요. 가장 큰 마음의 짐입니다.”
팡스카이는 국내 중소 게임사 100여곳과 함께 애플·구글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집단조정 신청도 준비하고 있다. 양사에 지급한 30% 수수료 중 20% 이상을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계에 따르면 국내 게임사가 2020~2023년 두 회사에 지급한 인앱 결제 수수료는 9조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더 많은 게임사가 집단 대응에 나서기를 독려했다. 무너져가는 국내 게임업계, 특히 중소 업체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점점 자본력 갖춘 대형 게임사만 살아남는 구조가 되고 있어요. 중국 게임사도 이젠 국내 퍼블리셔 없이 직접 유통하며 물량 공세를 펴고요. 한 번 잘못되면 바로 삐걱거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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