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사이]이준석 의원을 생각한다 > Q&A

본문 바로가기
Q&A

[정희진의 낯선 사이]이준석 의원을 생각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민종 작성일25-06-12 05:00 조회11회 댓글0건

본문

지난 4일부터 시작된 ‘이준석 의원의 의원직 제명에 관한 청원’은 이틀 만에 14만4443명이 동의했고, 이 글을 쓰는 10일 오전 현재 청원인 수는 49만884명이다. 청원 성립 요건인 공개 이후 30일 이내 5만명 이상 동의를 훌쩍 넘었다. 실현 여부와 관련 없이 이 청원은 다른 국회의원들에게도 반면교사의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지난 6개월간 많은 일이 있었다. ‘객관적인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내게 절망감을 안겨준 사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를 교체하려던 시도와 그 발상이고, 또 하나는 3차 TV토론 때 폭력 발언으로 상징되는 ‘이준석 현상’이다.
다행히 두 사건 모두 시민들의 지혜로 저지됐다. 국민의힘 당원들의 ‘상식’으로 김문수 후보가 제자리를 찾았고, 이준석 후보는 8.34%의 득표율로 10%의 벽을 넘지 못함으로써 보수 진영에서 그의 위상이나 존재감은 주춤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준석 의원은 각자도생, 약자 혐오, 무한경쟁이라는 ‘시대정신’을 체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이준석 의원 개인의 문제를 넘어 그가 우리 사회의 일면을 대표 재현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분석과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의 지적대로, 이준석 의원의 존재는 공동체에 “압도적으로 해롭다”.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찾기 힘들 것이다. 부언하면, 나는 그에게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개인적 인격과 무관하게 그의 행동이 사회에서 ‘악’을 조직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방향을 찾지 못하는 ‘악’의 파편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그는 이를 최대한 활용한다. 본인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의정 활동”이라고 부른다. ‘악’의 대의제인 셈이다.
‘악’을 조직화하는 사람들
성선설과 성악설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하지 않으며,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구조와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을 넘나든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 내면의 악을 끄집어내어 조직화, 세력화할 때 이준석 의원 같은 이를 지지할 수 있다. 페미니즘도 예외가 아니다. 매우 우려되는 ‘페미니즘’인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즘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니체의 고뇌대로 선악이라는 대립 구도 자체이다. 니체는 선과 악의 이분법 패러다임을 넘자고 제안했다. 선과 악은 시비(是非), 팩트, 객관, 진실의 문제와 연동한다(극우 단체 이름 중 하나가 ‘트루스포럼’이다). 이런 식의 접근 방식에서는 강함은 곧 선하고 옳은 것이 된다.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면 강해야 한다. 그것이 지지율이든, 폭력이든, 합법이든, 불법이든 간에 사람들은 강함, 즉 영향력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처럼 진보와 보수의 세 대결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한쪽만 광장에 모이거나 가시화되면 한쪽은 불안해한다. 우리 편이 많이 모이고 ‘보여야’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보수의 퇴보가 심각하다는 데 있다. 대립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수준이 높아야 나의 대응도 성장할 수 있는데, 상대방이 너무 ‘아니면’ 대립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어이가 없어진다. 유승민 전 의원 같은 보수는 설 자리를 잃고, 일부 유튜버들의 가짜뉴스가 보수의 길을 주도한다. 상황이 이러니, 이 행렬에서 탈출한 조갑제 대표가 상식인으로서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선한 자보다 약한 자가 ‘되자’
신영복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한 구절이 있다. 선생은 <주역>을 논하는 장에서-당신 말로는 “여담”이라지만-내가 생각하기엔 인간의 본질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보여준다. “나는 점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점치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을 의지가 약하다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부류의 의기(意氣) 방자(放恣)한 사람에 비하면 훨씬 좋은 사람이지요…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니체의 첫 저작 <선과 악을 넘어서>에 나오는 “약한 자가 되어라(werden)”라는 문구를 상기시킨다. 독일어의 ‘werden’은 ‘되다, 생기다, 만들어지다, 자라다’ 등의 의미가 있다. 니체가 말한 “약한 자”는 순응하고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다. “힘이 없음”을 인정하고 기존 권력 구조를 부정하며, 새로운 가치 체계를 창조하는 자를 의미한다. 약한 자는 강한 자가 만든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사유하는 위치성이다. 약자인 상태가 아니라 “약자가 되자”는 주장이다.
약한 자는 기득권에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타자성, 결핍, 단점, 약점을 강자 중심적 사회를 전복하는 자원으로 삼는 사람을 말한다. 니체가 말하는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기존의 강자처럼 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다.
이점이 중요하다. “선과 악을 넘어서 약한 자가 되라”는 니체의 사상은 혁명적이고 동시에 평화주의의 단초가 된다. 오늘날까지 그의 사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발전주의적 근대를 비판하는 중요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이 어떤 사람에게는 자원이 되는 세상이다. 혐오는 극우의 최적 상품이다. ‘이준석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조에서 자기 위치를 모르는 특정 그룹이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면서 실제 피억압자인 여성, 노인, 장애인을 증오하는 ‘기득권 세력의 피해의식’이다.
이준석 의원은 “공정”을 외치지만, 그 공정은 약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의 원리를 적용할 대상을 자기가 정하겠다는 타인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정치학이다. 그는 기존 한국 정치의 창조적 파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탈을 쓴 복수자이다.
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한 이들이 반드시 그를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연금 문제 때문이거나 거대 양당의 대안처럼 느껴져서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이준석 의원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언제나 지나치게 당당하다(“의기가 방자하다”). 2030 남성이라는 ‘피해 집단’을 대변하고 자기만의 ‘합리성, 문명, 시민성’을 확신한다. ‘갈라치기’는 불필요한 갈등을 조직해 공론장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도(顚倒)된 인식과 실천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통해 수행하게 만든다. 이 의원은 2030 남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한다.
선악 구도 속에서 이준석 의원을 악마화하는 것은 또 다른 ‘이준석’을 낳을 뿐 약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의 문화를 바꾸지 못한다. 선악을 넘어서서 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약자가 돼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은 선하면서도 강한 사람이 많은 사회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선한 사람은 강자가 될 수 없다. 그런 사회라면 이미 유토피아일 것이다. 다른 시각의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선한 자, 옳은 자가 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성주의 평화학에서는 니체의 약한 자 개념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한다. 대표적으로 사라 러딕은 권력은 영향력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며, 인간 몸의 연약함에 주목한다. 인간의 몸은 취약하고 고통에 무력하다. 우리는 모두 유한하며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저항과 전복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나의 약함을 수용하고 타인의 약함을 포용할 때, 우리는 안도와 평화를 얻는다.
기존의 정치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보호한다는 가정 아래, 그 보호의 기준을 정하는 권력을 갖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모두가 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린이, 노인, 아픈 사람, 장애인의 몸은 이준석 의원이 피해집단이라고 말하는 2030 남성들과 다르다. 그러나 ‘병역의 의무로 피해자가 된 2030 남성’들도 언제든지 그리고 언젠가는 취약한 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원리가 인간이 서로를 돌봐야 할 이유, 인간의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붙인다면, 내가 이준석 후보의 선거운동 중 기이했던 장면은 그가 주로 대학가를 찾아가 학식을 먹는 것이었다. 40대인 그가 20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박근혜 키즈가 아니다. “압도적 새로움?” 그 새로움의 내용을 직면하고 갱신할 때가 왔다.

인스타 좋아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